프롤로그
어린 왕자. 제목은 정말 많이 들어봤고, 어린 왕자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어린 왕자보다도 그 보아뱀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봤던 건지, 아니면 특히나 인상이 깊었던 것인지. 어린 왕자하면 그것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렇게나 친숙한 어린왕자였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는 잘 몰랐다. 구매한 것은 영한문 합본판이었는데 원래는 영문판을 보면서 영어 공부하려고 샀다. 그런데 영문판을 읽기 시작하는데 이해가 팍팍 되지는 않는 답답함에 한글판을 먼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읽어 내려간 어린 왕자는 그 익숙하고도 강렬한 보아뱀 이야기로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보아뱀 이야기에서 어른들과 어린 주인공의 생각이 대립된다. 어린 주인공은 보다 상상력을 발휘하는 그림을 그리지만, 어른들은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을 뿐이다. 그런 어른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주인공이지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자신이 이상하다고 여겼던 어른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자신도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그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끝까지 읽고 보니 이게 책의 주제였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해보았다. 어릴 적의 나는 어떻고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부르는 어색한 나지만 20대 후반이면 사회에서는 '사회 초년생'. 어른의 범주에 막을 발을 디딘 존재로 여겨지기 마련이다. 그런 지금의 나는 '눈에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머릿속에는 '얼마를 벌어야 할까?',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그 돈으로 무엇을 할까'에 대한 대답은 여러 가지가 들어가지만 그 중에서도 높은 우선 순위를 차지하는 것은 '외모'이다. 20대 후반이 되면서 신체가 늙어감이 약간은 느껴지기 시작했고, 이 노화는 꾸준히 진행될 것이라는 사실이 두렵기도 하다. '외모도 경쟁력이다'라는 말들을 한다. 나의 생각 또한 그렇다. 여기저기서 경쟁을 한다. 누가 더 키가 큰지, 누가 더 눈이 큰지, 누가 더 근육이 많은지, 누가 더 옷을 잘 입는지. 특히나 우리나라여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약 20년 전 어린이 '나'는 어땠을까?
작년의 나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데 하물며 20년 전의 나? 보아뱀 그림을 그리곤 했을까? 전혀 기억 나는 게 없다. 그 때의 기억을 어렴풋이 더듬어 보자면 나는 뛰어다니는 것을 엄청 좋아했고, 아이스크림, 친구들이랑 놀이터에서 놀거나 게임을 하거나 하는 것을 좋아했고, 잠도 참 잘 잤던 것 같다. 정리를 해보자면 굉장히 소박했고 걱정할 것이 없는 생활이었던 것 같다. 내가 신경쓸 부분이, 내가 관여할 부분이 없어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그 시절의 나는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전혀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부모님이 입혀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아니면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인간도 동물이니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존재할 수 있다. 자본주의에서는 그 척도가 돈이니까. 그리고 '내가 이렇게 돈을 막 쓸 여유가 있다.'하고 보여줄 수 있는 게 '보여지는 것'이니까. 그런 것일까? 근데 어린 시절의 내가 살던 때도 자본주의 체제였다. 그냥 나이가 먹으니까 그렇게 되는 것일까? 정말 미스터리다. 그렇다면 책에서 말하는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길들여짐
책에서 말하는 중요한 것은 '관계', '추억'이다. 어린왕자가 주인공과 만나고 자기가 어떻게 지구로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며 여러 별들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해 말해준다. 사실 그 부분이 나는 그 부분이 되게 어려웠다. 어떤 부분은 이해가 갈듯 하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아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읽어 내려갔다. 그 여정 끝에 마침내 지구에 도착한 어린왕자는 뱀과 여우를 만나게 된다. 사막 가운데서 뱀을 만난 어린왕자는 외롭다며 사람들이 많은 곳은 어디냐고 묻는다. 이에 뱀은 '사람들과 있어도 외롭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어떤 그림도, 어떤 지문도 없었지만 뱀이 그 말을 할 때의 분위기나 말투, 표정이 어떨지 그려졌다. 그 감정을 나도 느껴본 적이 있었다. 군대에서, 호주에서, 옷가게 알바할 때. 사람들과 무엇을 같이 하기는 했지만 공허하게 느껴지거나, 아니면 짜증이 나기도 했다. 왜냐? 나는 그들과 '길들여짐'의 관계를 맺지 않았다.
여우는 모두 다 비슷한 것들 중에서 '길들여진 것'은 다르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사실 이 '길들여짐'이라는 개념이 잘 이해가 가진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는 '그래, 그런 거지'하며 이해가 된 듯 했으나 지금은 그 개념이 희미하다. '길들여짐'은 관계를 맺으면서 특별해진 사이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길들여진 사이는 그와 관련된 모든 것에 투영된다. 여우가 어린 왕자가 자신을 길들인다면 자기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밀밭이 근사한 광경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경험 누구나 있을 것이다. 특정 장소, 특정 노래가 어떤 날의 날씨, 분위기, 기분, 특히 같이 있던 사람을 상기시킨다. 나는 그 어떤 이에게 '길들여진' 것이다. 어쩌면 서로가. 이게 이 책에서 말하는 중요한 것이다. 어린 왕자가 떠나가지만(잘 이해가 안 간다. 왜 그랬는지...) 주인공은 괜찮다고 말한다. 어느 별을 보더라도 그 어딘가에 어린 왕자가 자신이 준 양을 돌보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에. 개인적으로 나는 '주인공의 기억 속에는 어린 왕자에 대한 추억이 있기 때문에'로 이해했다.
총평
책을 읽고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라는 진리를 깨달았다. 깨달았기보다는 상기시킨 것 같다. 알고는 있었겠지만 전혀 신경쓰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내 뇌리를 때리는 임팩트는 없었다. 그냥 '그래, 그렇지.' 정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국에 사는 20대 후반인 나에게 눈에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 정말로. 경제적인 것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 상태가 된다면 저 말이 100% 이해가 될까? 아니면 돈이 부족한 사람이라도 더 가치를 최우선으로 중요시하는 사람이 있을까? 좀 머리가 아프다. 머리가 아파지는 것이 싫어서 '눈에 보이는 것도 중요해!'로 결론을 짓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러고 싶다.
사실 나에게 이 책은 어려웠다. 그 익숙한 보아뱀 이야기는 몇 번이라도 들었으니 그냥 술술 넘어갔는데 그 뒤에 어린 왕자가 여러 별들에서 만난 사람들 얘기에서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냥 나에게 활자 그 자체였다. '어린 왕자'. 제목이 참 유아스럽다. 어린이들이 읽으면 좋을 책 같지만 한 10년 뒤에 다시 한 번 읽어도 내가 다 이해할 수 있을까 싶은 책이다. 이래서 명작인가보다. 두고 두고 읽어야하니. 이렇게 지극히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책을 읽다보니 다른 비슷한 책들도 읽어보고 싶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든지, '오즈의 마법사'라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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