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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 책 <나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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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고른 이유


 근래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잠이 잘 못 자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자고 싶을 때 잠이 오질 않았다. 누워서 가만 있기도 뭐하고 핸드폰 보기는 싫고. 책을 읽어야 했다. 지식에 관한 책은 자기 전 머리 아파 싫고, 소설은 너무 재밌어서 밤을 새울까봐 에세이를 골랐다. 이 책 내용도 잘 몰랐다. 그냥 'tvN 막돼먹은 영애씨'의 작가가 쓴 것이라고 해서 골랐다. 나는 '영애씨'를 엄청 좋아한다. 첫 시즌부터 본 것은 아니고 한 시즌10부터 보았는데도 너무 웃겼다. 시즌제라 내용도 따라가기 쉬웠고. 지금 내게 가장 웃긴 TV프로그램이 '나 혼자 산다'이지만, '영애씨'를 할 때는 '영애씨'가 제일 웃기는 프로그램이었다. (언제 또 시작할는지... 소~름끼치게 기다려지네) 책 내용은 40대 여자인 작가가 근래에 겪은 이야기에 관한 것이다. 주로 나이듦과 사랑 이야기이다. 일기처럼 쓰여진 내용이라 굉장히 빨리 읽을 수 있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우리 나라는 '나이 많으면 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나이에 부여하는 의미가 크다. 그런데 나이 많으면 뭐? 물론 시간이 흐르는 만큼 그 속에 축적된 지식이나 노하우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자기보다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자신보다 잘하는 영역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고, 내가 그 어린 사람보다 잘하고 박식한 영역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도 그렇게 얘기한다. 자신은 40대가 되었지만 어떤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었을 때 자신이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무서웠다고, 자신이 마흔 살의 탈을 쓴 스무살 짜리 같았다고 말한다.

 또한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쌓아올린 자신만의 사고 안에 갇혀 버리는 것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언젠가부터 '카스'를 먹지 않는 사람을 보면 '맥주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치부해버리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런 사소한 것에서부터 어떠한 중요한 믿음까지 우리는 자신만의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 같다. 나만의 정신 세계가 있고, 그 안에는 그 세계만의 법칙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에 어긋나면 '삐!' 경고음이 울리면서 공격자세를 갖추거나 상대를 피해버린다. 아주 사소한 것에도 말이다. 나도 별 것도 아닌 '여자 아이돌 가수 중에 누가 최고인지'에 대한 나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그리곤 상대의 주장은 말 같지도 않다면서 웃어넘겨버렸다. 지금 생각하니 너무 웃기다. 내가 보는 시각이 전부는 아닐텐데.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멋지게 나이 들기 위해서는 될 수 있다면 최대한 많은 경험들로 시간을 채우자 (허송세월 보내지 말자), 그 경험들에서 배운 것들을 잘 활용하되 그것이 진리는 아니라는 것을 항상 유념하자. 참 이상적이라서 '지킬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렇게 써놓고 간간이 나중에 꺼내 보면서 상기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외로움과 결혼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친한 친구들과 이런 저런 사정으로 만나기가 어려워지고, 그에 준하는 친한 관계를 새로 만들어 가기가 어렵다고 느낀다. 나는 내가 외로움을 그다지 타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지만 호주에서 외로움이 뭔지 많이 느끼고 돌아왔다. 그 외로움은 가족, 친한 친구가 있는, 내가 손을 뻗으면 나를 붙잡아줄 그런 단단한 관계가 있는 한국에서 느꼈던 외로움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 이후에 시간이 많이 흘러서 가족들과 친한 친구들을 못 보게 되는 상황에 대해서 상상을 종종 해보곤 했다. 끔찍했다. 보다 많은 안정적이고 진실한 인간 관계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20대인 내가 이렇게 상상하듯이 40대의 저자는 많이 외롭다. 친구들이 없지는 않지만 그들 사이에는 '결혼'이라는 경계가 놓여있다. 대화를 하면서도 의도치 않았지만 저자는 '왕따를 당하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지경이 되었다. 그만큼 좁힐 수 없는 거리가 생겨버린 것이다. 저자도 결혼을 할만하다고 생각한 상대가 있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싶었던 저자와 달리 천천히 하고 싶었던 상대는 저자의 성화에 못 이겨 떠나버렸다. 저자는 그 때를 많이 후회한다. 저자 스스로도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주변에서 '결혼 안 하냐?'는 질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빨리 진행하고 싶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결혼은 굉장히 큰 의미인 것 같다. 뭐 다른 나라에서도 그렇겠지만... 결혼이 통과의례 중 하나라고 여겨져서 그런 것인지 '결혼하지 않으면 뭔가 문제가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주변에서 가만 두지를 않는다. 저자의 그 당시 남자친구가 어떤 생각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가 조금 기다려줬다면 어떤 결과가 있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결혼이든 뭐든 자기가 원해야 하는 것인데 뭐 그리 참견이 많은지...


 한편으로는 결혼한다고 해서 '이 외로움이 끝날까?'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결혼 관련 기사를 보면 댓글에 '결혼해도 외롭다'는 댓글이 베스트 댓글에 오른 기사를 많이 보았다. 그렇다면 이 외로움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가 답을 주는 듯하다. 책에서 저자가 외로움에 힘겨워서 '세상이 나를 왕따시킨다'라고 친구에게 말한다. 대화를 이어가던 중 저자는 친구의 여자친구의 안부를 묻는다. 이에 친구가 버럭한다. 친구의 여자친구 이름을 잘못 부른 것이다.



10년 가까이 한 명만 사귀었는데 그 한 명 이름을 기억 못 하냐? 세상이 널 왕따시킨다고 생각하지 말고 네가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관심 좀 가져 봐라! 이 세상을 왕따시킨 년아!"



 이에 저자가 깨달음을 얻는다. 자기 연민에 빠져 주변을 둘러보지 못했음을. 외로움이란 주변 사람들을 돌보지 못한 시간만큼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먼저 상대에게 관심을 갖고 연락을 하고 안부를 전한다면 그건 바로 돌아오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언제가는 돌아오지 않을까? 그런 관계가 쌓이고 쌓이면 자연스레 돈독한 관계로 발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요새는 내가 재미없는 얘기도 잘 들어주려고 한다. 이전에는 관심없는 얘기는 단답만 하며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면 조금 더 깊이 들어가려고 관계 질문도 던지고 리액션도 노력 중이다. 상대에게 더 관심을 가지기 위해. 내가 외롭지 않기 위해.



총평



 이 책은 에세이라 깊은 책이 아니다. 에세이를 잘 읽지를 않아서 모든 에세이가 이런 지 잘 모르겠다. 정말 일기 같다. 그래서 어떤 것에 대해서 고민하는 저자의 얘기가 나오다가 해결책이 명확하게 나오지 않는 부분도 있다. 살면서 어떤 일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만 당장은 해결책이 떠오르지는 않는 경험 있지 않은가? 그래서 좀 답답하다? 아쉽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런 얘기를 하는구나. 그래서 어떻게 결론을 지을까?' 이런 기대가 생기는데 약간 흐지부지 끝나는 느낌이라서. 그러나 그 속에서 곱씹어 볼만한 얘기가 있다. 큰 기대가 없었고 아주 쉽게 쓰여서 빨리 읽었으나 중간 중간 멈춰서 내 상황도 대입해본 대목들이 있었다. 그건 주제가 주제인지라. 외로움과 결혼, 나이듦. 인간이라면 누구나 살아가면서 여러 번 고민하는 것들에 대해서 쓰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고민들로 사로 잡혀 있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만의 해결책을 찾을 수도? 아니라면 공감이라도 가능한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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