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호주 하늘 (내가 살던 퍼스 교외 지역 기라윈의 블랙모어 애비뉴)
* 이 글은 2015년 9월부터 2016년 5월까지 호주워킹홀리데이를 한 저의 이야기를 쓴 내용입니다. 지금과 여러모로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0. 4학년 1학기 그리고 휴학
4학년 1학기였다. 여자 동기들은 취업을 위해서 휴학을 많이 한 상태였고, 간간히 어디 인턴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술자리에서 만난 동기들은 칼취업이 안 되는 상황에서 학생 신분이 낫다는 판단에 휴학이나 졸업 유예 선택을 했다고 했다. 그 말에 나도 고민이 많아졌다. 하고 싶은 것이 뚜렷한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전공을 살리기엔 많이 애매하다.
그래, 나도 휴학을 해야겠어. 휴학하고 사무 인턴을 도전해봐야겠다. 나는 정말 그저 그런 '취업 준비'라는 핑계로 휴학을 해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뚜렷한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졸업 후의 생활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도 계획대로 인턴에 도전하기로 했다. 동기들이 많이 하는 공기업 청년 인턴에 나도 도전했다. 처음 쓰는 자소서에, 무 자격증이 원인이었을까? 쓰는 족족 떨어졌다. 3, 4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떨어질만 했다. 왜냐하면 엉터리인 자소서, 갖추어지지 않은 스펙. 기본도 안 되어 있던 것이다.
취업의 어려움을 약간 맛본 후 기본부터 갖추고자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마케팅 관련 대외활동을 시작했다. 근데 이게 화근이었다. 대외활동은 거의 주마다 조 과제를 제출해야 했는데 10명의 인원이라 무임승차자가 많았고, 조장을 맡은 나는 속이 뒤집어졌다. 오죽하면 열받아서 밤을 새는 날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뭘 그런 걸로 밤을 샜나 해도 그땐 많이 스트레스였다. 한 달을 하다 미련없이 그만두었다. 조원들이 맘에 들지 않으니 앞으로의 3개월을 함께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후 자격증만 공부하니 생활이 완전히 밤낮이 바뀌었다. 너무 우울했다. 생활을 정상으로 붙잡을 수 있는 강제적인 스케줄이 필요했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포부와는 다르게 여느 휴학생이 타는 테크를 타고 있었다.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었던 것은 유통업에 종사하고 싶어서 백화점에서 근무하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5개월을 근무하였다. 그 당시 내가 주 6일 일하면 받은 월급은 130만원 정도. 용돈 쓰고 나니 450만원 정도가 남았다. 뭐에 쓰지? 고민하다 젊은 시절 버킷리스트로 가장 많이 꼽히는 유럽 여행을 혼자 가기로 결정했다.
1. 유럽 여행에서 만난 워홀러들
영국 런던에 도착했다. 13시간 정도의 비행에 몸이 끊어질 것 같았지만 첫 해외여행이라 아드레날린이 폭발했다. 그렇게 잠을 뒤척이다 여행 둘째날, 벌써 외로웠다. 약 한 달간의 여행 일정인데 벌써 외로웠다. 서둘러 여행 준비할 때 많이 들렀던 '유랑'이라는 네이버 카페에서 동행을 찾았다.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 여행하기 시작했고, 같이 다니다 혼자 다니다를 반복했다.
런던 다음으로 파리를 갔다. 런던에서의 마지막날 인종차별을 3차례 당해서 멘탈이 바사삭거릴 때쯤 묵었던 한인 민박에서 또 좋은 사람들을 만나 에펠탑 구경을 갔다. 거기서 동갑인 친구를 만났는데 파리에 온 지 한 달 정도 되었다기에 여행 중이냐고 물었더니 '워홀 중'이란다. 호주워킹홀리데이 다녀온 선배들이 몇 명 있었지만 프랑스에도 워홀이 가능한지는 몰랐다. 그 정도로 딱히 관심이 없었다. 그 친구는 심지어 프랑스를 아예 못한단다. 약간 의아했는데 자기가 패션을 좋아하고 언제 이렇게 해외에 살아볼 기회가 있겠냐며 굉장히 긍정적인 미소를 지어보내는 모습에 약간 놀랐다. 황당하면서도 부러웠다. 저런 패기가.
워홀러를 또 만난 것은 바르셀로나에서였다. 또 유랑을 이용했다. 이번엔 여자 아이다. 또 동갑. 이 아이도 굉장히 긍정적인 느낌을 풍겼다. 아일랜드에서 1년 간 워홀을 마치고 유럽 여행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려 한다고 했다. 그 아이도 미소를 굉장히 자연스럽게 지었고, 외국인들과 얘기하는데도 거리낌이 없었다. 저런 게 짬밥인가? 싶었다. 그 모습을 닮고 싶었다. 그 자연스러운 미소, 자연스러운 제스처가. 그 친구도 한국에 있을 땐 안 그랬는데 아일랜드에 살면서 문화를 체득하다 보니 몸에 밴 것 같다고 하였다.
2. 장장 5개월 동안 고민
그렇게 4월 초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장기간 여행은 나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실제로 나뿐만 아니라 여행한지 20일이 지나고 집에 가고 싶다는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여행 일정이 남았지만 다 때려치고 돌아가고 싶다고 말이다. 그런데 웃긴 게 여기 있으면 저기 가고 싶고 저기 있으면 여기 오고 싶다. 계속해서 워홀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워홀에 대해 자세히 검색해보기 시작했고, 많은 나라에서 워홀이 가능하다는 것. 체류 기간, 비자 심사 방법도 각각 다르다는 것 등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런던을 잊지 못했다. 옛것과 현대적인 것의 조화로움, 예술의 도시, 멋진 사람들.
그래서 처음에는 영국으로 가려고 생각했는데 한 번 가면 2년까지 가능하고, 그래서 그런지 비자 발급이나 보험 가입 등 돈이 장난 아니게 들었다. 그리고 런던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에 예상 생활비가 어마어마했다. 이제 남은 대안은 아무 때나 아무나 갈 수 있는 호주. 호주가 남았는데 4월부터 계속 갈팡질팡 마음이 확신이 서지 않았다. 블로그, 카페 등 워홀 관련 정보들을 뒤져보고 걱정하다 밤을 새기도 했다. 들어오는 정보는 당연히 부정적인 정보였다. 호주워킹홀리데이 도중 누가 죽었다느니, 사기를 당했다느니.
마음이 복잡해서는 아무 것도 못하겠다 싶어서 일단 돈을 벌기로 했다. 호주워킹홀리데이를 가든, 생활비로 쓰든. 일단 벌기로 했다. 그렇게 또 유통업인 spa 브랜드에서 일을 했다. 하루 하루 피곤에 쩔은 날들이 지나자 어느새 7월. 이제는 결정을 해야 했다. 복학을 할지 호주워킹홀리데이를 갈지. 근데 그 때 내 마음 속에서 든 생각은 어이없게도 저 둘 중 하나가 아닌 '학교에 가기 싫다'였다. 학교에 가면 동기들 거의 다 졸업한 상태에서 혼자 다녀야 하고, 취업 준비를 해야 하고. 나는 '졸업 후 취업'이라는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 결정을 했지만 휴복학 신청 마감일까지 고민을 하다 결국 휴학을 1년 더 연장했다. 굉장히 홀가분했다. 이후 착착 호주 갈 준비를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호주워킹홀리데이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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